동국대학교 법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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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18 10:45
[법무법인 태평양 공익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인터뷰 공유
 글쓴이 : 법과대학
조회 : 4,167  
 
 1. 인터뷰일시 및 장소 : 2018. 6. 14. (목) 15:00 - 16:00, 한국지식재산센터
 2. 참석자 :
    - 동국대학교 : 국제인권법 담당교원 송수정 교수 및 법학과 재학생 3명 (임익호, 조혜영, 현지훈)
    - 동천 : 이탁건 변호사
 
다음은 국제인권법 담당교원 송수정 교수가 이탁건 변호사와의 인터뷰 후
법과대학 학생들에게도 진로에 대한 안내와 정보제공을 위하여 공유해주신 내용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변호사다움이란 무엇인가? 화려한 대형로펌변호사의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에게 인권이라는 가치를 변호하는 당연한 일은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지난 6 14, 국제인권법 송수정 교수의 제안으로 임익호(법학14), 조혜영(법학16), 현지훈(법학13) 학생이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사무실에서 이탁건 변호사를 만났다. 화려함을 뽐내는 강남에서 난민인권의 등불을 따뜻하게 밝히며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이탁건 변호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단체사진.jpg

Q.
변호사님과 재단법인 동천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전담변호사로 일하고 있는이탁건이라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로스쿨 2기 졸업생으로, 2013년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졸업 후 대한항공 법무실에서 2년 조금 넘게 일을 하며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그 후 재단법인 동천으로 이직을 한지 2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동천 내부에서는 주로 이주민과 난민 분야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동천은 대형 로펌의 공익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재단입니다. 2002, 법무법인 태평양은 공익활동위원회라는 내부 위원회를 통해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체계적으로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형 로펌 공익 활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활동위원회만으로는 전업으로 영리 활동을 하며 추가적으로 시간을 내 공익 활동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재단법인 동천을 만들어 태평양과 연계하여 공익 활동에 전담하는 변호사를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입니다. 대형 로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며 태평양 이후 공익 전담 변호사를 채용하는 경우가 늘었고, 재작년 말에는로펌 공익 네트워크라는 11대 로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활동을 공유하고 공동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대한항공 법무팀에서 동천으로 이직을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직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길게 이야기 하기 싫을 때는 당시땅콩회항이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 뿐만 아니라 일종의 커리어 체인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익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차에 기회가 와 선택을 하였습니다. 먹고 살 수 있는가 고민도 하였지만 지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Q.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방금 전에 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하자면, 제가 변호사가 된 연도에 비해 나이가 있는 편입니다. 대학생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가 뒤늦게 전공을 법학으로 바꿨고, 학생 운동을 하면서 사회를 위해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내가 꿈꾸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을 하며 변호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로스쿨을 갈 때쯤에는 이런 거창한 생각보다는 기필코 성공해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고, 로스쿨을 졸업할 때쯤 결혼을 앞둔 상태였기에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졸업 후, 대한항공에 재직하게 되었고 회사 자체는 만족하고 다녔지만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직을 준비할 당시 아내가 딸을 임신 중이었는데요. 나중에 딸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딸이 아빠 오늘 뭐했어?’ 라고 물어보면 딸에게 자랑스럽게 회사에서 하는 일들을 말해주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딸에게 행복하게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Q. 동천에서 주로 맡고 계신 공익 법무는 무엇인가요?
 
  우선 동천의 공익 활동은 크게 1)난민, 2)이주외국인, 3)사회적경제, 4)장애인, 5)북한/탈북민, 6)여성/청소년, 7)복지 이렇게 7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NPO 법 센터를 만들어 비영리 단체의 일반적 법률 자문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주로 난민, 이주민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 난민 인권에 대한 업무를 맡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로스쿨 자기소개서에 향후 난민 변호사 전문가가 되겠다고 써 있더라고요. 사실 동천에 오기 전부터 외국인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현재 국내에 계신 이주민 분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이 경험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는 유럽이나 미국 사회를 봤을 때 한국 역시 이주민 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이는 한국의 인구 구조상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농어촌은 이주민 여성, 다문화 가정이 많고 한국에는 수 없이 많은 이주민의 자녀들이 커가고 있는데, 이들이 성인이 돼서 자기 목소리를 낼 때, ‘한국 사회가 과연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고, 이러한 일을 제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셋째는 제가 영어 능력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외국인 사건을 담당하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겠다 생각한 것도 있습니다.”
 
Q. 난민 또는 이주민과 관련된 이슈는 아직 국내에서는 관심이 부족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난민 이슈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한국의 난민 신청자는 2만 명이지만 그 중 난민 인정은 1%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에 난민으로 오는 사유는 다양합니다. 난민 협약의 5가지 요건인 인종,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 집단, 종교, 민족 등입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많이 오는데, 난민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그 숫자가 적다는 점입니다. 당사자 운동이 되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려면 숫자가 많거나 문제가 심각해야 하는데, 난민 문제의 경우에 후자는 충족된다 생각하지만 아직 그 숫자가 많지 않아 대중이 심각하게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난민법 제정 이후 난민 신청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지만, 한국 법제도 내지 한국사회는 심사 체계, 난민을 송환하기 위한 구금시설, 제도나 절차,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을 때의 심사 절차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제주도의 경우 예멘 국민도 무비자입국이 가능하여 한 비행기에 많은 사람이 와서 난민신청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예멘은 내전이 극심하고 난민 사유가 명확한 경우가 많은 편이라 많은 국가가 예멘 출신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마치 허위 난민들이 조직적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난민신청을 한다고 보도가 된 바가 있습니다. 일련의 보도내용 중 일부는 제주도 출입관리사무소 공무원의 의견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누가 난민이며 난민 심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많은 예멘 난민신청자가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신청단계에서는 6개월동안 취업이 불가능하고 정부지원도 거의 없어 숙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집단적인 난민신청에 대한 심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육지로 올라오려면 별도의 여행신청허가가 필요하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은 예멘과의 무비자 입국허가를 종료한 상황입니다. 이는 단편적인 대응이라는 여겨지며 이미 입국한 난민에 대한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변호사님께서 직접 맡으신 사건 중 기억이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최근에 승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였으나 단속에 걸려 불법체류자라는 게 밝혀졌고 강제 퇴거의 대상이 되어 구금을 당한 사건입니다.
 
한국정부의 미성년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대응은 2010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있었는데 국제사회의 권고와 시민사회의 운동을 통해 한국정부는 청소년에 대해 강제퇴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구금은 풀렸으나 강제퇴거명령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강제퇴거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례가 없고 한국 법원은 강제퇴거명령에 대해 출입국관리소의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어 강제퇴거처분을 취소한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패소할 거라 생각했지만 패소하더라도 주장할 것은 다 주장해보자고 하였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3주 전에 승소를 했습니다. 공익변호사로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사건을 담당하지만 이 사건에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았던 것 같고 승소를 한 사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Q. 공익 변호사는 업무량도 많고 승소율이나 급여가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공익변호사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 학생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멘탈 관리법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공익변호사가 승소율이 낮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고, 분야별로 다 다르다고 생각이 듭니다. 난민 소송의 경우 2015년의 경우 단 한 건도 승소하지 못했고, 2016년에는 2건정도 승소한 거로 기억한다. 그렇게 따지면 낮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건을 다 맡는 것이 아니라내가 이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전략소송으로 의미가 있다혹은기존의 판례를 바꾸거나 아직 확립되지 않은 법원의 의견을 이 소송으로 확립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내지는법원의 해석이 없으므로 내가 한번 다퉈보겠다라는 취지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급여의 경우 비영리단체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익변호사의 연봉도 낮은 편인데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더 적은 돈을 받고 더 훌륭하고 더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급여가 지나치게 낮고 돈을 받지 않는 것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직할 때 큰 고민중에 하나가 금전적인 부분과 생계와 관련된 문제였는데 동천의 경우 생계유지에 대한 제 개인적 기준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멘탈 관리 측면은 해소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사실 이 분야가 감정 소모가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뢰인 내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때로는 패소하고, 항상 보던 사람이 강제퇴거를 당하거나 하는 일을 겪게 되니 감정 소모가 심한 것 같습니다.”
 
Q. 태평양과 동천은 업무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있나요?
 
상당부분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도 법인을 만든 이유 중의 하나가 이해 관계 충돌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태평양과 함께 일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종속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Q. 벌써 저희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에 대해 기존의 사시 출신 법조인들의 무시가 있다고 소문을 들었습니다. 공익 변호사 계에도 이런 일이 있는지,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서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부생들에게 입시를 위한 팁 혹은 로스쿨 생활에 대한 조언이 있으시다면 무엇이 있나요?
 
사회인끼리 따돌림은 없습니다. 로스쿨의 긍정적인 측면은 변호사의 수가 늘어났다는 점인데 이는 로스쿨제도가 도입했기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숫자가 늘어난 만큼 과거에 비하여 공익변호사를 꿈꾸고, 실제로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변호사계에서, 출신의 차별보다는 실제 업무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므로 이러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의 경우 현재 변호사시험에 대한 압박이 강해져서 학생들이 로스쿨 3년동안 변호사 시험에 매진하고 있는데 이는 리걸 크리닉과 법조인의 역량을 강화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의 재학시절과 많이 바뀌어서 섣불리 조언을 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로스쿨 3년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일단 변호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확고한 신념을 잊지 말고 꿈을 위해 로스쿨 기간 동안 공부하라고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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